지금, 여기서 호흡하기

신촌세브란스병원 내과계중환자실 간호사 윤수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선 ‘취미’마저 어려운 과제입니다. 겨우 출근한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에 치이고 퇴근하고 나면, 침대가 아닌 곳에서 내 몸을 곧게 세우는 것마저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또 괜히 취미생활이라고 하면 왠지 남들 보기에 (마치 클라이밍이나 독서처럼) 꽤나 번듯하고 그럴 듯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래! 오늘부터 바로 시작이야!’라고 패기 넘치게 한 다짐도 꽤나 여유롭지 못한 제 시간과 돈, 체력, 의지 앞에서 힘없이 꺾이고 맙니다. 그렇게 일터가 아닌 곳에서 오롯한 나의 즐거움을 위한 ‘무언가’를 딱히 찾지 못 하던 제가, 퇴근 후 연남동의 한 고요한 요가원으로 향한 지 어느덧 꽉 찬 일 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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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는 제가 알고 있는 ‘호흡(呼吸)’의 영역이 넓어졌다는 점입니다. 저는 내과계 중환자실 간호사로 10년 가까이 일해 오며, 수없이 많은 인공호흡기 적용 환자를 만나왔습니다. 지금껏 그들을 간호하며, 제게 가장 중요한 업무이자 과제는 ‘현란하고도 skillful한 suction’, ‘매섭고 빈틈 없는 ventilator monitoring’, 그 결과 ‘이전에 비해 호전된 SpO2, ABGa, chest X-ray’였습니다. 그렇게 인공호흡기에서 그리고 환자의 ABGa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환자의 호흡수가, tidal volume이, peak pressure, pO2 등등이 제가 지금껏 인지하고 몰두해 왔던 ‘호흡’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제가 처음 요가원에 가서 눈을 감고 콧구멍을 하나씩 막아가며, 몸이 두둥실 들릴 정도로 깊고도 넓은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 숨으로 가득 찬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 마치 몸이 쪼그라져 사라질 정도로 그 숨을 그대로 다시 내뱉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며 든 생각은 ‘오, 이렇게 온 숨을 다 내뱉은 지금 이 순간의 PEEP은 얼마일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호흡은 I:E ratio가 1:1이려나?’, ‘살짝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파오는데, 아무래도 pO2가 낮은 거겠지?’와 같은 웃기면서도 말도 안 되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요가 철학에 대한 지식은 비록 짧지만 애정만큼은 진심인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요가의 처음과 끝은 사실 ‘호흡’입니다. 호흡에 대한 지독한 고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에게 숨을 내쉬고 뱉는 행위는 지극히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공기의 흐름입니다. 하지만 요가에서 바라보는 ‘숨’은 결코 당연하지 않습니다. 한 번의 귀한 숨을 기꺼이 나의 힘으로 들이마셔 내 몸으로 들이고, 세상으로 다시 되돌려 내뱉는 행위는 몸뿐만이 아니라 더 깊은 내면을 깨우고, 진정한 나 자신을 깨닫고, 세상을 배우는 매우 정성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요가 동작은 숨과 함께 흐릅니다. 처음 요가를 배울 때 생소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그 동작을 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기보다는, ‘그 동작을 하고자 할 때 그 지점에서 숨이 쉬어지는지 아닌지’를 묻는 선생님의 안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동작에 낑낑대며 힘겨워하다가도, 간신히 만나게 되는 숨 한 번에 어찌나 큰 감동과 위로

를 받게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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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요가를 통해 경험한 새로운 영역의 호흡은 제 자신과 삶을 점차 조화롭게 바꿔 나갔습니다. 내 안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타인의 마음 혹은 바깥 상황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사소한 일에도 번잡해 하고, 쉽게 남을 판단하던 저는 이제 그럴 때마다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이어 온 숨을 마시고 뱉어냅니다. 그리고는 지금, 여기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과 감정에 (아직도 너무나 어렵지만) 최대한 집중해 봅니다. 예를 들면, 땅 위에 붙어 있는 무거운 내 두 발바닥을, 정수리가 뚫릴 정도로 쏟아지는 햇빛을, 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솟구치는 원망과 분노를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이 ‘있는 그대로’ 감사해지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무슨 호흡 한 번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냐 하신다면 선생님들도 지금 이 글을 읽는 지금 여기서, 그저 흘려보내는 한 번의 숨을 좀 더 챙겨가며 쉬어보세요. 뭔가 다르지 않나요?


호흡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은 곧 자연스럽게 저의 중환자실 간호사로서의 생활에도 흘러들었습니다. 온전한 숨을 쉼으로써 얻는 일련의 과정 중 가장 첫 단계부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새삼스레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여전히 저는 환자의 lung care에 열심히인 간호사겠지만, 이전과는 약간 달라진 마음가짐입니다. 산소포화도, ABGA, chest X-ray가 호전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환자가 앞으로 영위할 삶의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하는 ‘숨’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환자에게 보다 진심이어야만 할 겁니다. 제가 담당 간호사로서 8시간 내에 환자분에게 ‘해야만 한다’고 판단한 것보다 환자분의 의도 혹은 바람, 그리고 가족분들의 걱정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할 겁니다. 물론 쉽지 않을 테고, 특히나 너무나도 바쁜 중에는 제 자신과 여러 번 씨름해야 할 테지만, 제가 요가를 통해 배우고 깨달은 ‘호흡’에 환자분이 가까워지도록 돕기 위해선, 그 방법이 훨씬 더 옳을 때도 있어 보입니다.

아마 이런 저의 경험과 다짐은 꼭 ‘요가’였기에 가능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어떤 취미생활이라도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해의 폭을 넓혀 주는 물꼬를 터주기만 한다면 선생님들의 개인적인 일상에도, 그리고 간호사로서의 업무에도 꽤나 새롭고 새삼스러운 순간들을 가져다 줄 거라 믿습니다. 항상 마음속 한 켠에 담아두고 있던 바로 그 취미를 시작하고 즐기며, 그 여정 속에서 다채로운 의미를 발견할 선생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